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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신, 라의 이야기: 창조와 권력의 신화

고고학자 알엔스 2025. 4. 24. 00:54

고대 이집트 문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독특한 문화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신화는 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특히 태양의 신 라(Ra)는 창조의 신이자 왕권의 상징으로서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절대적인 존재였습니다. 오늘은 이 라 신화 속 이야기들과 그 상징이 현대에도 주는 의미에 대해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태양의 신 라 관련 사진
태양신 라(RA)

창조의 시작, 혼돈 속에서 태어난 라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라는 세계의 처음이자 끝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혼돈의 물, 누(Nu) 속에서 라는 스스로를 창조해 태어납니다. 이 장면은 창조 신화 중에서도 독특한데, 보통은 신들이 다른 신을 낳거나 조합되는 형태인데 반해, 라는 스스로 존재하게 된 신이라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라가 등장한 순간부터 세계는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침을 통해 습기와 건조함, 즉 습기의 여신 테프누트(Tefnut)와 공기의 신 슈(Shu)를 창조합니다. 이 신들이 세상을 구성하게 되는 바탕이 되죠. 그 외에도 하늘과 대지, 인간과 다른 신들이 그의 의지에 따라 형성됩니다. 마치 누군가가 아주 세밀하게 짜여진 각본에 따라 하나하나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런 ‘자기창조’의 서사가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인간이 흔히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여기는 기독교적 사고와 달리, 이집트 신화에서는 인간은 신의 눈물에서 태어났고, 그 신은 누구의 손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존재했다는 설정이 오히려 신의 존재를 더 신성하게 느끼게 합니다. 라는 단순한 태양의 신이 아닌, 본질적으로 존재의 근원임을 강조하죠.

낮과 밤, 끊임없는 순환과 전투

라가 단순히 세상을 창조한 것에 그치지 않고, 매일 태양을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며 세상을 비춥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일련의 과정이 라의 여정이라고 믿었고, 이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매일 밤마다 벌어지는 사투였습니다.

밤이 되면 라는 하늘을 떠나 지하 세계를 지나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거대한 뱀 아포피스(Apep)와 싸워야 합니다. 아포피스는 혼돈과 어둠의 상징으로, 태양이 다시 떠오르지 못하게 하려는 존재입니다. 매일 밤 이 전투에서 라가 승리하기 때문에 우리가 매일 아침 태양을 볼 수 있다는 해석이 전해지죠.

이 부분에서 저는 현대인의 삶과의 유사성을 느낍니다. 하루를 밝히고 저무는 태양처럼, 우리는 매일을 살며 끊임없이 시련과 고난을 겪고, 그것을 이겨냄으로써 다음 날을 맞이합니다. 태양이 다시 떠오르는 그 자체가 하나의 희망처럼 느껴집니다. 이집트인들이 라에게 보낸 경외심은 단순한 신앙을 넘어서 생존의 철학과도 같았던 셈입니다.

권력의 상징, 파라오와 라의 관계

라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제는 바로 권력입니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스스로를 라의 아들이라 여겼고, 실제로 ‘라의 현신’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곧 파라오의 권력이 단순히 정치적 권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적 권위까지 포함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태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빛을 비추지만, 그 태양을 상징하는 존재가 지상에서는 단 하나의 인물에게만 특별히 연결되어 있다는 개념은 고대 왕권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아주 강력한 도구가 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파라오의 이름 중에는 ‘람세스’(Ra-messes, 라의 아들)처럼 라와 직접 연관된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시스템은 현대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지도자나 권력자가 스스로를 어떤 ‘정의의 상징’ 혹은 ‘국가의 의지’로 포장하는 일은 여전히 빈번합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이런 정치적 신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도구를 갖고 있지만, 그 시초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보면 그 뿌리의 강력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마무리하며

태양의 신 라는 단순한 자연 현상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 질서의 수호자, 그리고 절대 권력의 상징으로서 고대 이집트 신화 전반에 걸쳐 매우 중심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 시대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매일의 고난을 이겨내는 것, 그리고 권위와 권력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모든 주제들이 라의 신화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고대의 이야기들이 단순히 과거의 신화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삶의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저는 정말 흥미롭고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태양처럼 매일 다시 떠오르는 삶의 에너지를 기억하며, 우리도 스스로의 라가 되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