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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불분명한 시대, 제7·8왕조 이야기

고고학자 알엔스 2025. 4. 24. 23:12

고대 이집트 역사에는 찬란한 영광의 시기도 있지만, 그만큼 어둡고 불분명한 시기도 존재합니다. 그 대표적인 시기가 바로 제7·8왕조입니다. 이 시기는 고왕국과 중왕국 사이, 제1중간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문헌적 기록도 부족하고, 고고학적 증거도 제한적이어서 “이집트 역사의 미스터리”라고 불릴 만큼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기입니다.

오늘은 그 미지의 시대, 제7·8왕조에 대해 알려진 사실들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추정해 보고, 개인적인 해석과 함께 이 시기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조명해보겠습니다.

이집트 제7·8왕조 관련 사진
이집트 역사에서 가장 불분명한 시대, 제7·8왕조

기록조차 모호한 왕조들

제7왕조와 제8왕조는 기원전 약 2181년부터 2160년경까지 짧은 기간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왕 목록조차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고대 자료인 마네토의 기록에서는 제7왕조에 무려 70명의 왕이 70일 동안 다스렸다고 언급되는데, 이는 실제 역사라기보다는 혼란과 무질서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문장으로 해석됩니다.

실제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도 제7왕조의 실존 여부는 논란의 대상이며, 많은 학자들은 제7왕조가 전설적인 존재이거나 단편적인 권력 구조의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면, 제8왕조는 조금 더 실재 가능성이 높은 왕조로 평가되며, 멤피스(Memphis)를 수도로 삼고, 고왕국의 말기 체제를 간신히 유지하려는 노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의 왕들에 대해 남아 있는 정보는 대부분 파라오의 이름이 담긴 석비나 비석 조각, 또는 사후에 쓰인 왕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서로 다른 이름과 시기가 뒤섞여 있어, 정확한 계보나 통치 연대는 지금까지도 역사학계의 퍼즐로 남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시기의 기록 부재가 단순한 사료 손실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이거나 체계가 붕괴된 사회 구조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중심 권력이 무너지고 각지에서 독립적인 세력이 형성되면서, ‘역사’라는 체계적 기록조차 불가능했던 시대였던 것이죠.

고왕국의 붕괴 이후, 권력의 진공 상태

제7·8왕조는 고왕국의 마지막 왕조였던 제6왕조가 붕괴한 이후 등장한 왕조들입니다. 당시 이집트는 중앙집권적 체제를 유지하던 고왕국의 몰락 이후, 강력한 파라오 중심의 통치 구조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한 왕조의 교체가 아니라, 정치·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붕괴한 것을 의미합니다. 지방 귀족과 각 지역 총독들은 독립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왕의 명령은 전국적으로 통용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제7·8왕조는 통합 국가의 정점에 선 왕조라기보다는, 무너진 체제 위에 임시로 서 있던 권위의 조각들에 가까웠습니다.

이처럼 파라오의 권위가 약화되면서, 동시에 종교와 행정 체계 역시 마비되었고, 이는 왕권의 상징성을 더욱 약화시켰습니다. 당시 파라오들이 짧은 기간 왕위에 올랐다가 퇴위하거나 폐위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오늘날의 정치적 불안정과 비교하게 됩니다. 강력한 리더십이 사라지고, 분권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될 경우, 오히려 전체 시스템이 불안정해지고 권력의 공백은 더 큰 혼란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집트의 제7·8왕조는 이러한 정치 공백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결과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기라 생각합니다.

고고학이 말해주는 희미한 흔적들

제7·8왕조에 대한 사료는 희소하지만, 일부 비석, 왕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 무덤 구조의 변화 등을 통해 당시의 일부 상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왕들 중 일부는 피라미드나 거대한 무덤 대신 소규모 석조 무덤에 묻힌 것으로 보이며, 이는 경제적·정치적 위축 상태를 반영하는 지표로 해석됩니다.

또한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지방 묘비에 권력자의 이름과 업적이 강조되기 시작하는데, 이는 중앙 권력의 약화 속에서 지방 귀족의 세력 확대가 본격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흥미롭게도 일부 학자들은 제8왕조가 중앙집권의 마지막 시도였다고 해석합니다. 수도 멤피스를 기반으로, 과거 고왕국의 체제를 복원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너무나도 약화된 왕권과 커진 지방의 힘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입니다.

이 시기의 유물이나 텍스트를 마주할 때마다, 저는 고대 이집트가 얼마나 인간적인 사회였는지를 실감합니다. 문명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도 혼란과 분열, 재정의와 저항이 반복되었고, 이는 지금의 세계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느껴집니다.

결론: 미지의 시대에서 배우는 통찰

이집트 제7·8왕조는 실체보다 상징이 더 강한 왕조일지도 모릅니다. 역사적으로 짧고 불분명했으며, 기록도 희소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중앙 권력의 붕괴와 그 이후에 생기는 사회적 진공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기입니다.

이 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고대의 작은 조각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문명이 어떻게 무너지고, 또 어떻게 재건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는 일이기도 합니다. 혼란과 침묵 속에도 사람들은 살아 있었고, 각자의 방식으로 질서를 만들어가려 했으며, 그 조각들이 결국 다시 하나의 통일된 왕조, 중왕국 시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제7·8왕조는, 비록 가려진 시대이지만 가장 인간적인 이집트의 면모가 드러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불확실하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이 불분명한 시대를 통해 우리는 문명도 인간도 절대 완전하지 않으며, 그 속에서 더욱 강인한 회복의 서사가 시작된다는 점을 배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