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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23왕조: 분열과 혼돈의 시대를 살펴보다

고고학자 알엔스 2025. 5. 3. 02:57

이집트 역사상 가장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시기 중 하나는 바로 제23왕조다. 이 왕조는 명확한 왕위 계승이나 중앙집권 구조가 없었으며, 동시다발적인 통치자들이 각 지역을 지배하면서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제22왕조의 여파 속에서 등장한 제23왕조는 마치 한 국가 안에 여러 나라가 공존했던 시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번 글에서는 제23왕조의 기원, 주요 인물들, 정치적 혼돈 양상을 중심으로 이 시대를 살펴보며, 고대 국가가 겪는 권력 분열의 본질을 탐구해본다.

이집트 제23왕조: 분열과 혼돈의 시대를 살펴보다


1. 제23왕조의 탄생 배경: 연속된 왕조인가, 경쟁 왕조인가?

제23왕조는 전통적으로 제22왕조의 연장선상에 있는 왕조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별개의 경쟁 왕조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기원전 818년경 테베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운 파라오 파이브 시세네스 3세(Pedubast I)가 독자적으로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된 이 왕조는, 북부 이집트를 통치하던 제22왕조와는 별도로 움직였다.

이는 곧 하나의 이집트 안에 두 개의 왕조가 존재했던 셈이다. 더욱 복잡한 점은 이후 제23왕조 내에서도 왕권이 명확하게 계승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이브 시세네스 3세 이후 등장한 왕들, 예컨대 이우파(Shoshenq VI), 타클로트 3세 등은 지역 기반의 파라오에 가까웠으며, 서로의 왕위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는 이집트사에서 가장 "현대 정치와 닮은" 시기라고 생각된다. 다극화된 권력 구조, 지역 기반의 정치, 정치적 정당성이 모호한 상황은 오늘날 연합정부나 연방제 국가의 갈등 구조와 놀랍도록 비슷한 면이 있다. 고대라고 해서 단순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2. 파라오들의 중첩과 혼돈: 누구의 이집트였는가?

제23왕조의 가장 큰 특징은 **‘왕들의 중첩’**이다. 동일 시기,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른 파라오들이 각자 왕이라 주장하며 통치했다. 예를 들어 파이브 시세네스 3세가 테베에서 권력을 행사할 때, 타클로트 2세는 헤르모폴리스에서, 쉬숑크 5세는 레온토폴리스에서 각기 자신만의 왕국을 운영하고 있었다. 왕조가 한 명의 파라오가 아닌, 여러 명의 ‘지역 군주’들로 분열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당연히 중앙 집권을 더욱 약화시켰다. 종교적 권위 또한 더 이상 통합 기능을 하지 못했다. 아문 사원의 사제직은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고, 파라오마다 자신이 지지하는 사제를 임명하며 종교적 권위마저 갈라져버렸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일부 파라오들은 제22왕조 혹은 쿠시 왕조 출신들과 혼인을 통해 정치적 동맹을 맺으며 자신들의 정통성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사제직, 신전, 연합 결혼 등 다양한 수단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집트를 더욱 분열된 상태로 몰아넣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이 시기의 이집트는 ‘왕이 많을수록 나라가 안정된다’는 오랜 신화를 완전히 깨뜨린 사례라고 생각된다. 권력 분산은 이상적일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조율 기구가 없을 경우, 그것은 곧 혼란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3. 제23왕조의 몰락과 후속 왕조로의 이행

혼돈의 제23왕조는 결국 강력한 외부 세력의 개입에 의해 무너진다. 바로 쿠시 왕국의 침입이다. 누비아 출신의 강력한 지도자 피안키(Piye)는 기원전 8세기 후반, 분열된 이집트를 통합하겠다는 명분으로 북상했고, 이를 계기로 제23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피안키는 카르낙 신전에 자신의 승리와 정복 과정을 상세히 새긴 부조를 남겼다. 여기에는 각 도시의 군주들이 피안키 앞에 무릎 꿇는 장면도 포함되어 있다. 제23왕조의 파라오들은 쿠시 왕국의 침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내부 분열과 외부 압박이라는 이중고를 이겨내지 못한 채 역사 무대에서 퇴장했다.

이 시기의 몰락은 단지 군사적 패배만이 원인이 아니었다. 내적인 혼란과 권력의 분산, 그리고 종교 권위의 약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왕조의 붕괴를 예고하고 있었다. 피안키의 침입은 단지 그 종지부를 찍은 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제23왕조의 몰락이 단지 실패의 역사로만 남는 것은 아쉽다. 이 시기는 다양한 정치 실험과 권력 구조의 변화가 시도된 시기였고, 어쩌면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민주적 가능성’을 보여준 시기일 수도 있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그 안에서 오늘날의 정치 시스템과도 유사한 고민들이 담겨 있었다는 점이 의미 깊다.


결론: 혼돈과 위기의 시대
이집트 제23왕조는 역사상 유례없는 정치적 분열과 혼돈의 시대였다. 여러 명의 파라오가 동시에 존재하고, 종교 권위마저 갈라진 이 시기는 이집트 통치 구조의 근본적인 위기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하지만 이 혼돈 속에서도 고대 정치의 복잡성과 실험성이 엿보인다. 이집트사를 공부하거나 흥미 있는 분이라면 제23왕조를 단순한 실패로 보지 말고, 그 속에서 다양한 정치적 시사점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