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의 긴 역사는 찬란한 영광과 외세의 침입, 그리고 이에 맞선 저항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그 마지막 단계를 장식한 왕조가 바로 제31왕조, 또는 제2차 페르시아 지배기로 불리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기원전 343년부터 332년, 그러니까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를 정복하기 바로 직전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이집트 제31왕조는 이집트인들 스스로가 세운 왕조가 아니라, 외부 세력인 페르시아 제국(아케메네스 왕조)에 의해 강제로 병합된 정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단순히 피지배의 역사로만 보기에 아쉬움이 많습니다. 저는 오히려 이 시대를 이집트 문명의 마지막 숨결이 남아 있던 시기, 그리고 새로운 시대가 오기 전의 이행기로 보고 싶습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제31왕조의 개막
이집트 제30왕조가 몰락한 이후, 페르시아 제국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Artaxerxes III)는 기원전 343년 대규모 원정을 단행하여 이집트를 완전히 정복합니다. 이로써 이집트는 다시 한 번 외세의 통치를 받는 신세가 되었고, 이때부터 시작된 왕조가 바로 제31왕조입니다.
이 왕조는 사실상 페르시아 제국의 총독 정치체제에 가깝습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는 자신을 '이집트의 왕'이라 자칭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페르시아 중심의 정책과 정치 구조를 강제 이식한 통치자였습니다. 행정, 군사, 세금 시스템 모두가 페르시아식으로 재편되었고, 이집트 고유의 전통은 점차 억압되거나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페르시아가 이집트를 병합하면서도 일부 이집트적 요소를 인정하거나 차용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파라오로서의 이미지 유지, 신전 지원, 제의에 대한 제한적 허용 등이 그것입니다. 이는 지배 정당성 확보를 위한 전략으로 보입니다.
저는 이 시기의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를 보면서, 단순한 정복자가 아니라 문화적 정치력도 고려한 지배자였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 의도가 온전히 존중이었다고 보긴 어렵지만, 정치의 도구로 문화를 활용한 점은 냉정한 시대 인식을 보여줍니다.
반란과 불안정의 시대
제31왕조는 1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지속되었지만, 그 안에서 수차례의 반란과 내분, 국제 정세의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이집트 내에서는 여전히 반페르시아 감정이 뿌리 깊었고, 특히 종교적, 문화적 억압에 반발한 지역 귀족들과 사제 계층이 주도하는 지하 저항 운동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 시기 페르시아 제국 내부에서도 후계자 문제와 지방 반란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이는 이집트 통치 안정성에 큰 부담을 주었습니다. 실제로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사후, 그의 아들인 아르세스(Arses)는 짧은 통치 후 암살당하였고, 그 뒤를 이은 **다리우스 3세(Darius III)**는 페르시아의 마지막 왕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다리우스 3세의 통치 기간 동안, 이집트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변방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페르시아는 점점 더 내부 혼란과 외부의 위협—특히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 시달리게 되며, 이집트의 정치는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하였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강력해 보이는 제국일수록 내부 균열 앞에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틈에서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준비되고 있었다는 점은 역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알렉산더의 도래, 문명의 새 장을 열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은 마침내 이집트로 진군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은 이미 여러 전장에서 알렉산더에게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으며, 이집트는 큰 저항 없이 그에게 항복하게 됩니다. 알렉산더가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 그는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구원자이자 새 시대의 상징으로 환영받았습니다.
이는 알렉산더가 이집트 전통을 존중하고, 아문 신전에 제사 지내며 파라오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으려 했던 행보와도 연결됩니다. 그는 이후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고, 이집트의 중심지를 고대 이집트에서 헬레니즘 세계로 옮겨놓습니다.
즉, 제31왕조의 끝자락은 단지 하나의 왕조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 문명의 마지막 자취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헬레니즘과 이집트가 융합되는 새 시대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알렉산더의 등장 이후 이집트를 볼 때마다, ‘지배’와 ‘존중’이라는 두 단어를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정복자였지만, 이집트 문명을 한때나마 존중하고 계승하려 했던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제31왕조의 끝자락은 단지 종말이 아닌 변화의 출발점으로도 읽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며: 마지막이자, 다음 시대의 문턱
이집트 제31왕조는 그 자체로는 외세의 강제 지배기였기에 화려하거나 자랑스러운 시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고대 이집트 문명이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이행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비록 이집트인들이 주체적으로 세운 왕조는 아니었지만, 제31왕조를 통해 외세의 통치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고, 또 그 틈에서 어떻게 민족 정체성이 유지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기의 혼란과 공백이 있었기에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수 있었고, 이집트는 새로운 문화 융합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역사란 단절이 아니라 흐름입니다. 제31왕조의 끝은, 고대 이집트의 종언이자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의 서막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짧고 불안정한 시기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역사적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