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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제2왕조, 신화와 권력이 교차한 시기

고고학자 알엔스 2025. 4. 18. 15:01

이집트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번 빠져들고 나니 이 고대 문명은 단순한 ‘유물의 세계’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들의 왕조 체계, 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문명의 흥망을 지켜보는 것은 마치 한 편의 서사시를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제2왕조는 굉장히 흥미로운 시기였습니다. 혼돈과 전환의 경계에 놓인 이 시기는 신화와 권력이 미묘하게 얽히며 고대 이집트의 방향성을 바꾼 시점이었습니다.

이집트 제2왕조 관련 사진


제2왕조, 평화의 연장이었을까? 새로운 시작이었을까?

이집트의 제1왕조가 통일 왕조로서 초기 이집트 문명의 기틀을 닦았다면, 제2왕조는 그 기반 위에 어떤 제도를 구축할지 실험하던 시기였습니다. 흔히 이 시기를 ‘제1왕조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느껴졌습니다. 특히 정치 권력의 형태나 종교적 상징이 이 시기부터 급격하게 변화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제2왕조의 초반부는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호텝세켐위(Hotepsekhemwy)나 페리브센(Peribsen)과 같은 파라오들이 연이어 등장했는데, 이들은 단순히 왕조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상징화하고 재해석하는 데 집중한 인물들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이 시기부터 왕의 이름에 ‘세트’(Seth)라는 신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전까지 이집트 왕들은 대부분 호루스(Horus) 신과 동일시되었습니다. 그런데 페리브센은 처음으로 호루스가 아닌 세트 신을 자신의 보호신으로 삼습니다.

이게 단순한 종교적 선택이었을까요? 오히려 그 속에는 정치적 메시지가 깃들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호루스는 전통과 질서, 왕권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존재였지만, 세트는 혼돈과 전복의 신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막의 수호신이자 전쟁의 신으로서 강력한 힘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페리브센의 선택은, 당시 왕권 내부에 어떤 균열이나 도전이 있었으며, 그것을 새로운 상징으로 덮으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혼돈의 왕, 카세켐위(Khasekhemwy)의 등장

제2왕조의 마지막 파라오로 알려진 카세켐위(Khasekhemwy)는 제2왕조의 진정한 정점이자 결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호루스와 세트를 모두 통합한 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두 신은 끊임없이 대립하는 존재였는데, 그 상징을 한 왕이 동시에 받아들였다는 점은 대단히 정치적인 결단이자 매우 상징적인 행위라고 보고 있습니다.

카세켐위의 이름은 ‘두 권력(세트와 호루스)이 평화롭게 통합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순히 신화적 상징을 넘어, 정치적 통합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가 집권했을 당시 이집트는 심각한 내분 상태였고, 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신화 질서를 넘어서는 결단이 필요했던 거라 생각됩니다.

이 선택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바로 제3왕조의 창립자이자 고대 이집트 건축의 전환점을 만든 ‘조세르(Djoser)’ 왕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피라미드 시대의 문을 여는 인물이죠. 결국 카세켐위의 정치적 통합이 없었다면, 조세르의 피라미드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적인 시선으로 본 제2왕조의 매력

솔직히 고대 이집트를 공부하면서, 다들 가장 먼저 피라미드나 투탕카멘 같은 유명한 유물들에 끌리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2왕조를 접하고 나서 느낀 건, 정말 중요한 건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변화의 시기'라는 거였습니다. 이 시기야말로 이집트 문명이 왜 그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주는 본질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제2왕조를 보면, 인간이 권력을 어떻게 상징화하고, 그 상징을 어떻게 정치에 활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적 이미지를 권력 유지와 확대의 도구로 삼았던 당시 파라오들의 전략을 보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현대 정치와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처럼 제2왕조는 고대 문명 특유의 신비로움과 정치 현실이 맞닿아 있는, 정말 ‘교차점’ 같은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이 시기를 ‘숨겨진 하이라이트’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글을 마치며...

이집트 제2왕조의 경우 기록도 적고, 역사적 흔적이 적다고 합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가 많을지, 정말 조용한 변화의 시기 였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고고학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